잡담2018. 3. 3. 18:17


김어준의 공작 어쩌구는 말 자체로만 봤을 때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 한국당이 피해자를 준비시켜 세워둘 수 있지. 만에 하나. 1/10000. 0.01%.


문제가 되는 것은 김어준의 말에서 드러나는 전형적 한국 진보 남성의 사고회로이다. 김어준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에게 제보했더라면 (안태근 등을) 더 확실하게 조질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어준과 진보 남초 커뮤들은 그때까지 서지현 검사를 별 어려움 없이 지지했다.


그러다 고은, 이윤택 등의 추잡한 성폭력이 폭로되자 남초 커뮤는 "본질을 흐리지 마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본질은 안태근과 최교일 등을 '조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성범죄자들에 대한 폭로가 온갖 분야에서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이 진보 인사였다. 이렇게 되니 남성들은 본질이 자유한국당 조지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요점은 그게 아니다. 진보나 보수나 젠더 감수성은 다 똑같이 썩어 있다는 것이 요점이다. 2월 이후의 한국은 뿌리 깊이 박힌 그 썩은 종양을 적출하는 급진적인 과정에 있다.


진보는 정의로우며 보수는 썩은 꼰대이고 본인 성기 간수 못하는 추잡한 쓰레기라는 낡은 이분법은 완전히 틀려먹었다. 미투 운동은 보수를 조지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김어준과 남초 커뮤가 미투를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뻔히 보였는지 그들 자신은 모를 것이다.


어떤 남성들은 진보 인사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는 것이 수상쩍다고 공작 어쩌구의 관점으로 의미심장하게 지적했다. 그렇다면 폭로된 가해자 대부분이 민주당 지지자였던 미국의 미투 운동도 공화당의 음모였다는 것인가. 시발점인 하비 와인스타인도 민주당 지지자였는데. 진보 인사에 대한 폭로가 많은 까닭은 1. 폭로에 이를 만큼 성범죄에 대해 민감하게 인식하는 여성들이 진보적이고 따라서 진보 인사 주변에 위치해 있기 때문, 그리고 2. 유명한 사람들은 문화계에 많이 있고 문화계는 거의 대부분 진보 인사이기 때문이다.


김어준과 김어준계 한국 남자들은 '마땅히 그래야 할 구도'가 성립하지 못하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김어준은 공작 어쩌구를 발동시켜서 자신이 믿는 세계를 지키려 한다. 미투 운동은 보수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진보를 공격하기 위한 공작일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폭로를 한 피해자들이 가짜라고 주장할 만큼 뻔뻔하지는 못하다. 미래에 어쩌면 그럴 수 있다는 약한 주장을 조심스럽게 할 뿐이다. 김어준의 불안에 공명하던 남초 커뮤는 이 제안에 열광한다. 그 효능은 즉각 나타났다. 나는 이미 오달수를 옹호하며 "김어준 1승"이라던가 "JTBC가 현 정권을 공격하기 위한 음모"라고 하는 말들을 남초 커뮤에서 목격했다.


김어준과 딴지일보의 마초성과 끔찍한 젠더 감수성은 옛날부터 알려진 사실이었다. 김어준은 진보와 보수 어디든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남을 남성중심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할 것이다. 그는 본인이 검찰 성폭력 폭로 사건을 두고 한 말과 공작 어쩌구 하며 입으로 싼 똥이 누군가 보기엔 뇌의 주름까지 보일 정도로 전형적이라는 사실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의 모든 사고 흐름이 얼마나 명백하게 보이는지, 이 글을 쓰면서도 그냥 나체로 걸어다니는 인간을 보며 저 사람 옷 벗었다고 말하는 기분이다.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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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oklokl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