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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사연구 2주차 논평

lokloklok 2018. 3. 13. 21:05

현대과학사연구 2주차 논평

 




김근태, <식민지시기 과학기술자의 성장과 제약 인도, 중국, 일본과 비교해서>

김근태, <식민지 과학기술을 넘어서 근대 과학기술의 한국적 진화>

 

김근태, <식민지시기 과학기술자의 성장과 제약 인도, 중국, 일본과 비교해서>는 일제강점기 중 일제의 제한과 방해가 만연한 와중에도 한국인들이 주체적으로 과학기술을 공부하거나 연구하려는 등의 활로를 찾으려는 능동적인 행위자였음을 보여주려 한다. <식민지 과학기술을 넘어서 근대 과학기술의 한국적 진화>는 과학기술시스템과 과학자사회의 발전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해방 후 50년대, 60년대, 70년대에 이르는 기간의 과학기술 발전을 살핀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일제강점기 이후의 과학 발전이 일본의 유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고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두 논문 모두 넓은 기간을 통시적으로 살피기 때문인지 분석과 이해가 피상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첫 번째 논문이 당시 한국의 상황을 비서구 국가들이었던 인도, 중국, 일본과 비교할 때, 각 국가들의 상황은 그들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는 채로 제시되어 있다. 깊은 이해 없이 오로지 현상으로 나타난 외양만을 비교의 준거로 삼을 경우 비교가 적절한지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넓은 시간 범위의 사건들이 단순한 내러티브로 구성되고 배열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두 번째 논문에서 그러한 문제가 두드러진다. 이는 여러 시기의 변화를 관통하는 내러티브로 식민지 시기에는 과학기술의 가능성이 일제의 제약을 받았고 해방 후 현실화되었다는 것을 취한다. 내러티브 속 전환이 이루어지는 접점, 즉 해방이 이루어지는 시기의 묘사에서 이 이야기의 부자연스러움이 더욱 잘 보인다. 논문에 따르면, 일본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변화들은 한계를 간직하고 있으며 해방 후 이루어진 변화는 하나도 남김없이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이분법은 지나치게 단순하기 때문에 신뢰하기 어렵다. 해방 후의 혼란기와 이승만 독재 시절에 만들어졌던 제도, 시스템, 과학자사회가 흠 없이 긍정적이기만 할 수 있을까? 때로는 일제 주도의 개혁보다도 더 부족하고 서툴러서 오히려 발전에 방해가 되지 않았을까?

어떠한 거시적 역사도 악의 폭정에서 벗어난 선의 승리의 역사일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역사를 쓰는 사람을 특정 의도를 지닌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경우, 논문의 의도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이 제국주의 일본에 진 빚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논문은 해방 후 일본의 유산을 넘어서는 서사를 구성했다. ‘일제 도중 일어난 모든 일은 나쁘고’ ‘해방 후 일어난 모든 일은 좋다는 식의 이분법적 묘사는 그렇게 채택된 이야기의 부가물이다. 또한 비록 이 논문이 한국 과학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려 하지만 이러한 내러티브는 단선적인 근대화의 방향을 설정해놓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들과 같은 산업적, 과학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제에 의해 억눌려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민중사관은 포스트식민주의 사관에 의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또 과학의 일원론적인 발전 방향에 비판적인 과학학과도 맞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이 논문은 (그리고 사실 지난 주 근현대사 논문들도) 민중사관을 지지하기 위한 근거로 과학학에서 말하는 과학의 locality를 은연 중에 끌어들인다. 외세의 도움 없이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오랜 민족주의적 명제는 과학의 locality와 연관되어 현대적인, 즉 앞서나간 주장처럼 포장된다. 반대로 과학의 보편성은 일제의 앞잡이들에 의해 활용되었던 나쁜 개념이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과학의 locality한국의 실정을 고려한 연구 및 발전이나 ‘(외세와 독립된) 자립적이고 한국적인 과학 추구와는 좀 다르다. Locality는 과학지식의 생산과 관련된 것이지, 국제정치와 관련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보편적이라고 이해되는 지식이 사실 국지적 장소에서 만들어지며 그곳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이고 기술적인 개념이 과학 발전은 국가별,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민족주의적이고 당위적인 주장에 적용될 수 있는가? 내가 아직 배우지 못해 모르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의 나로선 민족주의와 과학학을 연관 짓는 것이 어색해 보인다.


 

오선실,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전력시스템 전환: 기업형 대형 수력발전소의 등장과 전력망 체계의 구축>

정재정, <근대로 열린 길, 철도>

정진성, 서평: <일제침략과 한국 철도>

 

오선실,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전력시스템 전환: 기업형 대형 수력발전소의 등장과 전력망 체계의 구축>을 읽고 깨달은 사실이 있다. 이 논문 이전에 읽었던, 행위자들의 복잡한 욕망과 신념과 이해관계를 관찰하겠다고 선언한 논문들은 일제 내 이해관계를 완전히 배제했다. 조선인들 사이의 복잡성은 중요하게 다뤄졌지만 그 와중에 일본은 조선을 탐욕스럽게 수탈하고 착취하고 먹어치우려 하는 단일한 존재였다. 그 논문들만 보면 일본은 조선을 약탈하기 위한 일념으로 자본가와 군부와 기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유기적으로 협동하는 일체화된 조직 같다. 물론 이것은 애초에 어디에 집중하느냐 하는 목표와 관련되어 있다. 기술시스템 건설 연구는 애초에 그 건설의 주체였던 일본의 이해관계를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선악 구도가 일본을 단순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아무래도 악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악을 미워하려는 의도에 거추장스러울 뿐일 것이다.

오선실의 논문은 그러한 함정을 피하고 일본의 복잡한 주체들을 직시하기에 시스템 건설의 기술적 모멘텀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해석을 개입시키지 않으면서 깊이와 신선함을 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전력시스템 건설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민들이 전기사용에서 소외되었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했던) 결론 부분에서 보이듯 이 논문이 일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다. 이처럼 민족감정과 거리를 두며 다면성을 분석하는 것과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서로 공존할 수 있다.

정재정, <근대로 가는 길, 철도>는 그 중간에 있는 것 같다. 서론에서 민족주의적 감상을 엄청나게 예고(“한국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했음에도 대부분이 통계와 사실들의 나열로 흘러간 덕분에 대부분 객관적인 서술처럼 느껴졌다. 또한 철도를 세우는 과정의 주체는 한국이 아닌 일본이었기 때문에 4장에 와서는 자본과 군부의 대립이 짧게나마 그려졌다. 그러나 그 외의 이해관계 충돌이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결국 이 모든 행위자들이 식민지 착취라는 단일한 목적을 가진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정진성, 서평, <일제침략과 한국 철도>는 마지막에 중요한 함의를 준다. 일본의 침략활동, 조선인의 저항운동, 주체성 형성 등을 묘사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술시스템이 당시 조선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도 역시 중요하다. <근대로 가는 길, 철도>의 저자는 결말에서 스스로 인정하는 바이지만, 위의 두 논문 모두 만들어진 시스템과 식민지 조선의 상호작용을 건너뛰고 있다.


 

김성원, <식민지식 조선인 박물학자 성장의 맥락 곤충학자 조봉성의 사례>

 

확실히 조봉성은 특이한 사례로 다가온다. 아무도 그의 행적을 친일 경력이라 하지 않고, 검색해도 그런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도출해낸 결론, “협력과 민족주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의 의미를 좀 더 탐구하면 좋았을 것 같다. 이것은 과학의 보편성을 말하는 것일까? 적어도 사람들은 과학의 보편성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봉성의 행적이 부각되지 않는 이유를 과학활동은 민족주의와 상관없이 보편적이니까 괜찮다라는 믿음에서 찾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 같다. 아래 <식민지 조선의 식물연구>의 나카이를 통해 보면 더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제국주의가 나카이의 목적을 위한 자원들 중 하나였듯이, 조봉성에게 일본 과학자들과의 협력관계나 조선인들의 국위선양지지, 과학운동 참여 경력, 심지어 과학의 보편성 개념까지도 모두 본인의 자리를 찾기 위한 활동에서 사용된 자원들이었을 수 있다.

단지 이렇게 보면 조봉성이 덜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학술적인 것과는 전혀 무관한 차원에서 조봉성이라는 개인은 좀 흥미롭다. 곤충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인들과 협력하는 연구원이 되고 그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과학대중화 운동에도 참여한 행보를 보면 그는 당대를 지배했던 심각한 정치적 문제들에 완전히 무관심했던 너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경우 과학운동은 그냥 인정욕구를 순수하게 따른 행동이었을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과학 너드와 위에서 말했던 기회주의자의 모습 사이에서 하나만 고르자면 전자가 더 보기 좋다.

 

 

이정, <식민지 조선의 식물연구, 1910-1945; 조일 연구자의 상호작용을 통한 상이한 근대 식물학의 형성>, 3, 5

 

시간이 없어 3장밖에 읽지 못했다. 계획했던 시간분배가 엉망이 될 만큼 각 챕터의 양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3장은 감탄스러웠다. 방대한 자료 속에서 흐름을 찾아내고 수많은 역사적 해석을 첨언하는 솜씨가 압도적이었다. <리바이어던과 공기펌프>를 읽은 적은 없지만 이런 책이겠구나 싶었다. 3장조차도 세심히 읽지 못했는데 기회가 생길 때 책 전부를 꼼꼼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기본적으로 나카이가 그에게 주어진 상황들의 틈새에서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아 개념, 조선의 식물들, 자신만의 독창적인 분류법, 쌓아온 인맥과 사회적 지위 등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며 분투한 내용이었다. 심지어 그는 본인의 주변부 과학자 정체성에 머무르는 대신 식물분류학의 논쟁에서 중심부 유럽의 전략을 가져와 사용하는 영리함을 보이기도 했다. 처음엔 이것이 스트롱 프로그램의 서술과 비슷해 보였지만, 책이 묘사하는 나카이가 사회적 배경의 수동적인 대리자가 아니라 그 모두를 자원으로 활용한 능동적인 행위자였다는 점에서 스트롱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있었다. 특정 이론을 바탕으로 했다기보다는 STS 일반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 (내 머릿속에 막연히 있는) <리바이어던과 공기펌프>를 연상시켰다. 그러면서도 서유럽 과학의 개념 대신 탈식민지주의적 맥락의 중심-주변 개념, 대동아 같은 근현대사에서 나오는 개념 등이 중심이었던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무척 좋은 해석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급하게 읽느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이 책을 마지막에 읽지 말고 처음에 읽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