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lokloklok 2018. 2. 28. 20:55





한 쪽의 목소리가 완벽히 제거된 로맨스를 어떻게 봐야 할까. <셰이프 오브 워터>의 크리쳐는 이 낭만적인 이야기에서 아무런 주체성도 갖지 못한 인형에 불과하다. 영화는 철저히 크리쳐의 관점을 배제하고 엘라이자의 경험과 감정만을 따라감으로써 관객이 그 괴물에 연민하고 공감할 가능성을 차단한다. 크리쳐는 엘라이자의 아름다운 경험을 장식하기 위한 대상화되고 수동화된 도구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대표하는 몇 개의 로맨틱한 장면들을 돌이켜 보면 나르시시즘이 듬뿍 발라진 모습으로 연상된다. 나는 영화의 결말부에서 나레이터가 읊어주는 시를 당연하다는 듯이 엘라이자의 것으로 따라갔다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괴물의 관점의 시일 수 있다고 한 해석을 듣고 기묘함을 느꼈다. 영화가 한 쪽의 관점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그런 해석이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셰이프 오브 워터>의 이런 측면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할 것 같다. 괴물과의 사랑이라는 이야기의 이질성을 무시하지 않으려면 그 괴물을 억지로 인간의 이해 안에 구겨넣는 대신 비인간적인 측면을 자연스럽게 살려야 한다. 또 <셰이프 오브 워터>가 크리쳐에게 부치는 길예르모 델 토로의 러브레터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만약 이 크리쳐가 탈인간적이지 않았다면 델 토로의 판타지는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델 토로가 사랑한 것은 인간의 이해를 완전히 넘어선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로맨스의 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라이자가 맡은 역할이 남자 배우에게 돌아가고 괴물이 여성형이었다면 이 영화가 관객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었을지 생각해 보자.


다행히도 길예르모 델 토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었다. 그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을 테고, 남성 감독 자신의 판타지를 성별을 역전시켜 여성 주인공의 욕망으로 표현한 것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 남성, 흑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선역으로 나타낸 구도 역시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나는 일부러 영화의 구성 요소들을 델 토로가 알리바이를 세우는 과정처럼 배열했는데, 이 영화가 정말 크리쳐에 대한 감독 본인의 사랑에서 시작된 기획이었다면 이런 순서로 구상되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이긴 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로맨스에 흠뻑 빠진 것을 보면 말이다.


하여간 이런 질문을 누군가는 던져야 한다. 어떤 이야기를 비윤리적으로 만드는 것은 소재를 다루는 형식인가 아니면 소재 자체 즉 내용인가. 작년인가 제작년에 페이스북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에 '오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었나 하는 페이지가 어느 정도 장난처럼 만들어졌는데, 내가 페북에서 자주 찾아 읽었던 사람은 '오이 혐오' 페이지의 혐오 발화에 비판을 쏟아내었다. 그 사람의 요지는 오이 혐오가 해롭지는 않더라도 그 혐오 발언의 형식은 기존의 소수자를 향한 혐오 발언과 일치하기에 유해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혐오의 내용(오이)만 유해한 것이 아니라, 형식의 반복과 재생산 자체 역시 유해하다. 그렇다면 <셰이프 오브 워터>는 어떨까. 감독 본인의 판타지를 여성 주인공을 통해 표출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를 훌륭하게 묘사함으로써 감독의 건전한 의식을 보여주었으니 그걸로 된 건가. 아니면 로맨스의 한 쪽을 완전히 침묵시키는 폭력적인 방식을 재활용한 것 자체가 불경한가. 


여기서 확고한 결론을 내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른 예시를 끌어들여서 잠정적인 결론을 제안할 수는 있겠다. 미러링은 발화의 형식을 내버려 둔 채 내용만 정반대로 뒤바꾸는 전략이다. 그것을 정당화시켜주는 요인으로 사회적 맥락(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과 의도(불평등한 구조 전체를 정치적으로 겨냥하는) 정도를 짚을 수 있다. 이 두 기준으로 대충이나마 <셰이프 오브 워터>를 재단해보자. 남성과 여성의 자리를 뒤바꾼 것은 사회적 자리를 재배치한 것이기 때문에 맥락이라는 측면에서 정당화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이 영화에 느끼는 찜찜한 구석은 의도에 있는 것 같다. 드러나지 않은 의도를 단정하는 것은 항상 트리키한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셰이프 오브 워터>가 전통적인 틀의 폭력성을 노출시켜 전복하려는 의도를 갖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그것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여러 장치들을 사용해 착시를 일으키고 감추려 한다. 따라서 의도는 그다지 정당해 보이지 않다. 의도의 불순함이 내용의 고운 때깔을 넘어서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기에 이 논의가 "<셰이프 오브 워터>는 비윤리적이다"라는 결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이 영화를 완전히 옹호하기 어렵게 만든다면 일단은 그걸로 충분하다.